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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전경 이미지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Samsung Child Education & Culture Center

자신을 숨기고 자신을 드러낸 공간의 오디세이

건축이 드러나지 않는 건축,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꾸준히 시도해온 현대 건축의 아방가르드,렘 쿨하스는 "나는 건축이 어떻게 이벤트의 흐름을 보내고, 강화시키고, 유연하게 하고, 투명하게 하는지에 관심이 있다"고합니다. 이렇게 건축을 흐름 즉 도시로 파악한 렘 쿨하스의 디자인을 삼성미술관 Leeum의 마스터 플랜과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렘 쿨하스의 디자인에서 건축가의 의도와 표정은 최소화됩니다. 그는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의 설계를 맡아 개별 건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동선을 제안 하였습니다. 대지의 경계면을 따라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와 주차 공간의 유리 벽면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했을 뿐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 무덤덤한 흐름 안에는 미래의 공간이 강력한 에너지를 품은 채 진동하고 있습니다. 유리를 통해 보이는 거대한 블랙박스와 그 블랙박스를 품은 높이 17m의 유연한 공간은 동선과 시점마다 서로 다른 공감각적 체험을 하게 하는 건축의 모험입니다. 렘 쿨하스는 또한 MUSEUM 1, MUSEUM 2로 이루어지는 삼성미술관 Leeum과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대지를 포용하고 조절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자신의 건물을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게 함으로써 자신의 건축을 표현하고자 한 렘 쿨하스의 의지는, 이 건축 단지를 내부순환이 이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조화로운 도시의 모델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건축은 통찰력과 주위 여건의 부딪힘이다”라는 렘 쿨하스의 언명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공간 계획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동교육문화센터가 될 것입니다.

건축가 - Rem Koolhaas
대지면적 - 3,980㎡
연면적 - 13,254㎡
규모 - 지상 2층, 지하 3층

Architect Tour

건축공정

건축가와 건축주, 설계시공사의 조화가 만들어낸 Leeum 프로젝트

1995년 처음 착수된 삼성미술관 Leeum 프로젝트의 전개 과정을 돌이켜보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기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들이 전체 배치 계획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심찬 계획과 공사 일정은 1997년 아시아 경제 위기로 지연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2년 공사가 재개되면서 그 간의 시간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면서 설계와 공사를 수행하는' 패스트-트랙(fast-track)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참여자 모두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만 가능한 프로세스였습니다.
공간 사용 프로그램이 진화하고 그 프로그램에 따라 일관된 컨셉트를 유지하면서 건축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디자인을 도출하기 위해 국내 측 설계사인 삼우설계는 램 쿨하스의 OMA와 협력하게 됩니다.

블랙박스

블랙박스, 서로 다른 감각을 관통하는 공간 경험

램 쿨하스는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가 들어설 대지를 검토한 후 지하 2층부터 지상 2층 사이(대략 17m), 즉 세 개의 다른 레벨을 포용하는 거대한 하나의 공간으로 구상합니다.
이 하나의 공간을 활용해 서로 다른 빛과 성격을 갖는 세 개의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한 것입니다.
모든 전시 공간의 중심은 개념적으로 전체 공간 내에 떠 있으면서 미래 예술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블랙박스' 입니다. 블랙박스는 이름 그대로 빛이 들어가지 않고 인공적 조작과 통제가 가능한 공간으로, 회화, 조각 뿐 아니라 다양한 멀티미디어 작품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블랙박스가 들어서면서 전체 공간은 천정고 6.1m의 지하 2층 전시 공간과, 천정고 5.1m의 미디어 전시 공간(블랙박스), 천정고 3m의 최상층 공간으로 나누어 집니다.
지하 2층과 블랙박스를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시각적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2개의 에스컬레이터는 서로 성격이 다른 두 전시 공간을 의도적으로 관통(penetration)하는 오브제 입니다.
또 '전시 공간은 독립적으로 닫혀 있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허물어 뜨리고 흥미 있는 시각적 경험을 하게 하는 동시에 블랙 콘크리트의 질감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시점(magic moment)들을 제공합니다.

램프와 필로티

전통적인 필로티, 인간적인 램프, 서로 끌어들이는 동선

램 쿨하스는 세 건축물이 어색함이 없이 하나의 유기체로 연계될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문화 단지 전체의 주진입로 역할을 하는 자신의 건물에 필로티(pilotis, 건물 전체 또는 일부를 기둥으로 올렸을 때 만들어지는 공간 또는 그 기둥 부분) 개념을 채용했습니다.
즉 MUSEUM 1의 로비로 직접 연결되는 램프를 만들어 관람객들의 주동선을 해결할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
이 접근 방식은 노인, 장애자, 어린이의 접근성을 더욱 쉽게 하는 장점이 있으며, 누각 아래로 주진입부를 두는 한국 전통 건축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데크

건축적 사고의 실험장에서 사색의 공간으로

주차장 위의 데크는 야외 조각 정원으로 쓰입니다.
원래 램 쿨하스의 계획안은 두 상설 전시 공간(MUSEUM 1, MUSEUM 2) 앞에 놓여진 고원(高原, plateau)과 같은 평평한 '데크 공간' 이었습니다.
자기 건물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말소함으로써 건축을 표현하겠다는 건축적 사고의 실험이었던 것입니다.
이 개념은 여러 차례의 절충을 거치면서, 두 미술관을 조망하게 하는 넓은 시야는 확보한 가운데 부지 활용을 극대화하는 행복한 공존을 이루어냈습니다.
현재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옆의 주차장 위로 형성된 데크 공간은 삼성미술관 Leeum의 내부 산책로이자 사색적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이 곳에서 관람객들은 도시의 '혼잡'으로부터 평안을 느낄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렘 쿨하스

Rem Koolhaas

도시와 건축을 접근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렘 쿨하스 & OMA

렘 쿨하스 이미지

"도전적인 영감을 준 다양한 만남이 리움을 만들었습니다."

visit web site

현재 도시건축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건축가 렘 쿨하스는 194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생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도네시아, 미국 등 다양한 나라에 거주하며 저널리스트 겸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건축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영국의 AA 스쿨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자신이 연구해 온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여 도시의 맥락을 재편해 보고자 설계사무소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를 1974년에 설립합니다. 1996년 이래 하버드대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렘 쿨하스는 정신착란증의 뉴욕(Derilious New York) S, M, L, XL 등의 실험적 출판물을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2000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보르도 하우스, 로스엔젤레스 박물관, 로테르담의 네덜란드국립미술관(Kunsthal), 헤이그에 있는 네덜란드국립무용극장, 후쿠오카의 집합주택 넥서스 월드, 프랑스 릴의 콩그레스포, 최근에 개관한 시애틀 공공 도서관 등을 설계한 렘 쿨하스는 최근에도 북경의 중국국영방송본사(CCTV)사옥 설계를 맡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인천 신도시 계획 현상 공모전에서 당선된 바 있으며,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현재 건립 중에 있습니다.

렘 쿨하스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구조로부터의 자유, 정형화된 모델로부터의 자유,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 질서로부터의 자유, 프로그램으로부터의 자유, 계통이나 계보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기에 그의 작품은 어느 한 가지 방향으로만 치닫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점잖은 건축으로, 때로는 종난해한 건축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 현상 설계에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어진 건물보다 실현되지 않은 계획이 더 많다는 사실에서도 그의 아방가르드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렘 쿨하스는 건축가이면서 동시에 사회학자, 도시계획자로서 사회 현상을 분석합니다. 그는 오늘날 수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도시에 대한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합니다. 그는 모더니즘적 질서로 통제되는 도시의 허상에서 벗어나라고 주장하며, 자유와 휴머니즘을 강조합니다. 렘 쿨하스에 대해서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도시에 대한 희망적인 존재인 동시에 건축에 대해 가장 폭넓게 사고하는 건축가”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렘 쿨하스 인터뷰

건축가 인터뷰

렘 쿨하스 Rem Koolhaas

블랙박스는 미술관 안에서 또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완벽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장소로 일광이나 다른 조건들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작품을 외부 환경과 분리시켜 전시하기 위한 조작이 가능합니다.

선생님은 두 건축가와 함께 작업하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이끈 것으로 아는데요, Leeum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제가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Leeum에 모였고, 합의를 통해 일을 진행해 왔습니다. 공동 작업은 오늘날 건축계에서 흔한 일인데, 건축 공간이 작을수록 효과를 발하지요. 그리고 의견의 다양성이 존재할 때 디자인도 살아납니다. 또한 이번 경우는 보다 큰 규모의 이상 실현, 즉 문화에 관한 큰 투자라는 면에서도 보아야 합니다. 삼성이 문화 시설을 짓기 위해 전 세계에서 다양한 건축가를 초대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상 실현이라고 봅니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예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삼성측이 설계 과정에 주체로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아이디어를 만들고 디자인해 갔어요. Leeum 프로젝트를 규정짓고 있는 이 다양한 만남들은 우리에겐 도전적이면서도 영감을 주는 과제였습니다.

부지를 처음 보았을 때 소감은 어떠셨습니까? 서울의 도시적 특성과 연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처음 서울을 보았을 때 저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그 복잡함과 거대함이었어요.

동시에 그 구성 요소들은 섬세하고 작다는 것이었지요. 지형적으로 굴곡이 많아서 도시가 확장되기는 어렵지만 바로 그런 까닭이 적절한 긴장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평평한 도시였다면 특별할 것이 없었겠지만 서울의 지형은 하나의 장관을 이루며 매력을 발산하지요. 미술관의 부지 역시 좁은 편인데다 언덕도 있었어요. 처음의 구상은 지금과는 달리 경사면을 이용해서 지으려고 했지요. 그런데 이미 놀라운 특색을 지니고 있는 서울의 성격을 이 건물을 통해 바꾸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을 기존의 느낌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보다 간결하게 지음으로서 너무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화되도록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우연적인 요소를 살려서 설계했는데 그 즉흥성이 더욱 에너지를 느끼게 한답니다.

이미 언론에서도 많은 흥미를 보이고 있는 블랙박스는 이번 설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일 것입니다. 블랙박스는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블랙박스는 이 건물에서 완벽한 독립체입니다.

블랙박스는 의미 그대로 빛이 들어가지 않고 인공적 조작과 통제가 가능하며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곳이지요. 이 프로젝트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블랙박스라는 완전한 인공과, 자연적인 요소 사이에 변증법적 관계가 성립된다는 겁니다. 이 공간에 그림도, 조각도 전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블랙박스는 콘크리트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검은 고무, 검은 강철 같은 재질도 시도해 보았습니다. 제가 원래 콘크리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검은 콘크리트에서는 다른 재질엔 없는 고급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콘크리트는 그 자체만으로 어떤 공간을 생성시킬 수 있지요. 다른 재질에서는 이런 중후함이나 힘을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건물의 외벽은 불규칙한 윤곽선을 채용해 역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어떤 개념을 반영한 것인가요?

저는 원래의 공간을 많이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바뀌는 아시아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살린다는 것이 더욱 흥미로운 작업이지요. 이 프로젝트도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마리오 보타가 기하학의 거장이기 때문에 제 건물은 특정한 모양이 없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저는 건물의 윤곽을 열린 공간으로 보이게 처리함으로써 ‘공공의 공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밀집해 있기 때문이지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공공 공간도 폐쇄적으로 지어지는 추세인데 저는 이 곳에서야말로 진정한 공공의 공간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습니다. 나아가 대중을 위한 공간, 마치 동네 행사가 열리는 듯한 친숙한 공간의 이미지를 생각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면서 재미있는 일은 없으셨나요?

가장 재미있는 일은 프로젝트 자체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언제 시작했는지 아세요? 1995년, 8년 전입니다. 세상이 생각보다 안정적이라는 것을, 또한 건축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빠른 움직임과 건축의 느림은 항상 충돌하며 그 때마다 계획이 무산되곤 해요. 또한 지난 20년 동안 세계는 시장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해 건축가로서 하나의 철학을 지닌다는 것이 비생산적인 일이 되어버렸지요. 변화하는 사회에서 철학은 거치적거리는 듯 보이기도 하니까요. 건축이란 그 속성상 항상 누군가의 제안을 받아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상황을 바꾸고 싶어서 제 설계사무실 안에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연구하는 AMO라는 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작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중국,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 연합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모든 건축에 이미 도시공학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현지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곳의 역사성을 반영함으로써 주변의 맥락 안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건축을 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도 그런 생각으로 작업했고요. Leeum 역시 단순한 건축이라기보다는 도시공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요. 특이하게도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경제 위기가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미술관으로서 Leeum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무엇입니까. 또 선생님이 생각하는 미래의 미술관은 어떤 것입니까?

다양함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미술관이라기보다는 건물이 컬렉션의 일부를 이룬다는 개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물마다 공간 설정이 모두 다르니까요. 이 건물이 예술가와 큐레이터에게 친근한 건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미술관은 복합적인 모습을 띨 것이라고 봅니다. 이동 속도나 지형 조건이 지금까지의 통념과 아주 다른 박물관 말입니다. 특히 영상 전시는 보다 더 실험적인 방향으로 향할 것이고 아시아에선 그 쪽에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그런 실험적 프로젝트에 계속해서 참여하고 싶습니다.